우주여행자를 위한 생존법

우주여행자를 위한 생존법

저자: <폴 서터> 저/<송지선> 역

출판사: 오르트


방구석에서 우주 여행하기

당장 우주여행에 나서기 위해 일론 머스크처럼 부자일 필요는 없다.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가상 우주 여행을 주제로 한 이 책은 천문학자가 쓰고, 천문학자가 번역했다. 지구와 우주에 관한 이토록 재밌고 정확할 수 있을까? 칼 세이건 『코스모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역작.
2025.04.22 손민규 PD


저는 여러분이 우주에서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이왕이면 더 많은 지식을 활용해서 살아남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에는 지구의 과학자들이 수십 년, 어떤 경우는 수 세기 동안 연구하여 얻은 최신 과학 지식을 담았습니다. 다시 말해 상당 부분은 맞지만 일부는 틀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게 바로 현실입니다. 어떤 것이 확실한 사실인지, 약간 의심스럽거나 심지어는 완전히 추측에 불과한 것에는 무엇이 있는지 여러분께 알려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의 판단을 존중하세요. 하지만 저는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진리만을 말씀드리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 「여행자를 위한 경고」 중에서

딱 한마디만 할게요. 그러지 마세요. 여러분 폐에 있는 공기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대기압 1기압에 맞춰져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목 안에 있는 근육과 끈적끈적한 조직들은 진공에서 대기압 1기압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아무리 숨을 참으며 노력을 해도 폐 안의 공기는 바깥으로 나오는 길을 찾을 것이고 나올 때 무척 빨리 그리고 과격하게 나와 진공으로 퍼져 나가면서 (아마도 영구적으로) 목을 손상시킬 것이고 (아마도 영구적으로) 그보다 더 섬세한 조직들, 즉 이제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혈액 안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일을 하는 폐 속에 있는 작은 주머니, 폐포들을 손상시킬 겁니다.
--- 「아무것도 없는 공간」 중에서

이 물건이 얼마나 강력한 펀치를 날릴 수 있는지 이해하려면, 그 에너지가 아주 작은 덩어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그 에너지는 속도와 크기가 결합된 것입니다. 야구공 속구에 얼굴을 맞았다면 아마 그다지 좋지 않겠죠? 공의 크기가 그보다 좀 더 작아지면, 총 에너지를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빨리 던져야겠죠. 총알처럼 말이에요. 총알로 얼굴을 강타당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이제 총알보다 더 작게 만들어서 더 빨리 움직이게 하세요. 더욱더 작게, 그래서 더욱더 빠르게. 계속 작게 만들어서 기본 입자만큼 작아지면,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빨라질 거예요.
--- 「피할 수 없는 우주선」 중에서

탈출 속도가 빛의 속도와 정확히 같은 곳인 표면을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하는데요. 지평선이라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간 이유는 지평선이 가장자리, 어떤 경계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행성 위에 서 있을 때 표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바로 지평선이죠. 그 너머에는 완전히 미지의 세계인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이고요. 따라서 블랙홀의 지평선은 미지의 새로운 세계, 잠재적으로 알 수 없을 수밖에 없는 세계로 진입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사건’이라는 단어는 왜 붙었을까요? 글쎄요, 그건 그곳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겠죠. 파티 같은 이벤트 말이에요. 파티지만 여러분이 죽을 수 있는 곳입니다.
--- 「미지의 블랙홀」 중에서

일상생활에 비유할 수 있는 단어가 있어요. 바로 ‘구속되지 않은 상태(unbind)’입니다. 우리는 구속되어 있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와 분자는 다양한 힘에 의해 서로 묶여 있으니까요. 수류탄과 같은 충분한 에너지만 있으면 몸의 분자를 분리하여 사방으로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구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죽게 됩니다. 이 과정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매우 격렬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백색 왜성을 구속되지 않게 해 주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백색 왜성은 별을 만들기에 충분한 질량을 가지고 있지만, 암석으로 된 행성 정도의 크기에 그 많은 질량이 압축되어 있지요.
--- 「화려한 초신성」 중에서

1977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외곽에 있는 빅 이어 전파 망원경은 72초 동안 지속되는 예외적으로 강한 신호를 기록했습니다. 이 전파는 우주의 배경 전파보다 30배 더 강했습니다. 또한 매우 특이한 주파수, 즉 중성 수소가 자연적으로 방출하는 주파수에서 발생했습니다. 우연이었을까요? 그날 밤 관측을 담당했던 제리 R. 이먼은 인쇄물에 “와우!”라고 적을 정도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역사책에 기록된 이름이 바로 와우! 신호(the Wow! signal)입니다. 이 신호는 무엇이었을까요? 전혀 모르겠습니다. 1977년 그날의 외로운 밤 이후 전파 관측 역사상, 더 크고 더 많이 관측할 수 있는 방법들을 동원해도 이 신호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외계인이었다면 그들의 문명이 영원히 끝나기 직전에 “잘 있어.”라고 단 한 번 외치고는 사라진 것이죠.
--- 「외계인은 우호적일까」 중에서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수학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이 말도 안 되는 웜홀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희망에 빠져들게 하여 우리가 한창 즐기고 있는, 이러한 망상의 파티를 망치는 것을 즐기는 다른 물리학에 직면하게 되겠지요.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그리고 물리학이 존재한 이래로) 물리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질문 중 하나입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금지된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왜 금지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웜홀의 불가해한 수학 뒤에 궁극적인 해답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화이트홀과 웜홀」 중에서

우주가 위험한 곳이라는 건 이미 충분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명백히 설명했어요. 하지만 아름답기도 하죠. 아주 숭고하고, 특이하고, 경이롭고, 생각하게 만드는 곳임은 틀림없어요. 물질과 에너지의 찬란한 색채로 그려진 캔버스입니다. 물리학은 바로 그 캔버스 위의 붓이에요. 수 세기 동안 우주는 우리를 기다렸어요. 신비로움을 한 꺼풀 벗기면 새로운 신비가 드러나지요. 우주는 우리가 여행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우주의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행성에 발이 묶인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한정적이므로 우주로 가야 합니다. 새로운 흙에 손을 넣어 보고 새로운 빛을 봐야 해요. 배우고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요.

우리가 잊고 있던 날들

우리가 잊고 있던 날들

저자: <시릴 시아마>,<마리 델바르> 저/<김소연> 역

출판사: 더퀘스트


빛의 화가들이 그린 온기와 사랑

르누아르, 모네, 피사로, 커샛 등 인상파 화가들이 부드러운 붓 터치와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낸 아이들과 어린 시절의 풍경. 섬세한 그림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때 받았던 사랑을 되살린다. 지베르니 인상파 미술관이 직접 엄선한 고화질 도판 150점은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그림 산책을 선사한다.
2025.04.22 안현재 PD


클로드 모네,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베르트 모리조가 사랑을 가득 담아 그린 어린이들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예술과 삶이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 모습은 개양귀비꽃, 시소, 음악 수업, 나비 쫓기 놀이와 함께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어우러진다.
--- p.35

“나의 형 피에르가 태어나면서 아버지 르누아르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작은 허벅지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 앞에서 모든 이론은 힘을 잃고 말았다.”_ 장 르누아르, 《르누아르》, 1982 (중략) 르누아르의 삶과 작품 세계에서 어린이가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어른의 세계와 달리 어린이의 세계는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강렬한 조화로움이 존재하는 자연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p.81

알다시피 식사 시간은 모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자 온 가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 p.99

“아이들이 무척이나 기뻐합니다. 예쁜 장난감을 보내주신 미르보 부인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하고 있어요. 이 행복이 앞으로도 평생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_ 카미유 피사로가 미르보에게 보낸 편지(1892년 12월 29일)
--- p.105

“르누아르는 어린이를 교육하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했다. 그는 아이들이 혼자 힘으로 세상과 첫 관계를 맺기를 바랐다. (…) 다만 아이들 주변의 물건과 색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 p.136

“모자를 살 때마다 르누아르가 마음에 들어할지 고심했다.”_쥘리 마네가 쓴 일기(1898년 1월 8일)
--- p.189

그러나 커샛은 아카데미풍 회화 작품 속 가식적이고 부자연스러운 포즈를 혐오했다. 그녀는 진정으로 어린이다운 모습을 그리고 싶어 했다. (중략) 모리조는 당대의 통념을 깨고 여성이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되던 “모성의 성스러운 의무”를 저버리고 화가로서의 인생에 집중했다. 그녀는 쥘리가 태어난 1878년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했으며 전시회를 재정적으로도 지원했다.
--- p.198

19살에 런던으로 건너가 이제 막 자취를 시작한 아들 뤼도비크로돌프에 관해서 루앙에 있던 카미유는 맏아들 뤼시앙에게 1898년 8월 12일 자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쁜 짓을 못하게 막으면 아이가 몰래 더 나쁜 짓을 하게 된단다. 피 끓는 나이에 열정이 이끄는 곳으로 가려는 건 절대 막을 수 없어. (…) 그럼 난 도대체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까? 판단력과 적당한 불신을 가지라는 말밖에는 안 떠올라. 투덜이로돌프의 소식을 늘 기다릴 뿐이야.” 그러면서 자신이 젊었을 때 잘못된 길을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를 덧붙였다. “내게는 현재의 삶을 이끄는 강력한 원동력이 있었어. 바로 예술이었지!”
--- p.245

르누아르의 초상화 속에서 쥘리 마네는 도자기빛 피부와 함께 행복과 사랑을 듬뿍 누리며 자란 아이 특유의 충만한 기운을 자랑한다. 따뜻한 유년 시절 기억은 소녀가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힘이 되어줬다.

외우지 않는 공부법

외우지 않는 공부법

저자: <손의찬(메디소드)> 저

출판사: 빅피시


합격을 위한 공부의 무기

공부법 유튜버 메디소드가 알려주는 실전 공부 노하우. 공부는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통해 암기의 양을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소한의 암기만으로 극강의 효율을 끌어내는 저자의 비법은 공부가 막막한 수험생들에게 실용적이고 체계 적인 공부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2025.04.22 오다은 PD


이 책의 제목은 ‘외우지 않는 공부법’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암기’는 최대한 적게, 최대한 나중에 하자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암기’는 모든 시험에 필요하지만, 동시에 가장 멀리해야 할 것이다. ‘암기’를 멀리할수록 더 효과적인 공부법이 된다. 같은 시험을 준비해도 암기의 양과 타이밍은 사람마다 다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적게, 늦게 외운다.
두 번째는, 공부법 자체를 외우지 말자는 뜻이다. 여러 공부법을 접했는데도 성과가 없었다면, 껍데기만 본 탓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의 겉모습만 따라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진짜 공부는 머릿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공부하는가’를 이해해야, 내 공부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
--- pp.5-6, 「프롤로그」 중에서

“공부라는 건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모든 공부를 관통하는 방법론은 없을까?”
그렇게 ‘공부법 덕후’가 된 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년 뒤, 의대에 합격했다.
3년 뒤, 의대에서 상위 10% 이내의 성적을 받았다.
4년 뒤, 내 공부에서 고민이 사라졌고 다른 이의 공부까지 돕기 시작했다.
5년째 되던 해, 공부법에도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달라 보이는 여러 공부법에 일관된 원리가 숨어 있었다. 공부법은 불규칙한 개념의 집합이지만, 특정 관점으로 보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공부법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원칙이 있었다.
--- pp.22-23, 「의대로 가는 길을 찾고 싶었다」 중에서

합격을 좌우하는 공부의 3가지 원리는 바로 목적감각, 순서감각, 능동감각이다. 이 3가지 원리는 공부에만 사용되는 게 아니다. 나는 공부법을 깨닫고 업무의 효율도 좋아졌다. 의대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사업도
병행했다. 매일 독서도 하고, 운동도 했다. 나는 처음부터 생산성이 높았던 사람은 아니다. 공부법의 근간이 되는 3가지 원리를 체득한 덕분에 공부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성과를 얻었다.
--- pp.50-51, 「[목적감각] 목표만을 정조준하는 태도」 중에서

개념/기출/모의고사/파이널로 나누는 자체가 일종의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생각 없이 순서대로 따라가면 돈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사실은 개념을 공부하기 전에 기출문제를 먼저 봐도 된다. 그게 더 좋은 경우도 많다. 문제는 점수 받기에 유리한 순서대로 풀면 된다. 순서는 자기가 정하는 것이다. 앞에서부터 안 풀었다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 pp.60-61, 「[순서감각] 합격의 최단 루트를 찾는 비결」 중에서

내가 직접 단권화하는 방법이 있다. 이것을 ‘서브노트 공부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방법이 잘못되면 노트를 만드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올바른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때는 목차부터 만들어야 한다. 교재를 읽을 때 목차부터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식을 정리할 때도 목차부터 생각해야 한다. 목차 만들기는 ‘범주화’와 같다. 여러 지식을 체계적으로 구분하는 과정이다. 다만 전체 지식을 나만의 체계로 묶으려면, 과목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모든 교재의 내용을 합쳐서 정리하는 것이다. ‘완벽한 나만의 교재를 만들겠어’라는 생각에 무작정 모든 내용을 정리하면 안 된다. 그러면 시간이 끝없이 오래 걸리고, 제대로 마무리 짓기 힘들다. 앞서 ‘공부의 범위’를 강조했었다. 단권화할 때도 중요한 내용부터 정리해야 한다. 시험에 나오는 포인트만 우선 목차로 정리하자.

아날로그의 세계

아날로그의 세계

저자: <데얀 수직> 저/<김동규> 역

출판사: 북스톤


우리가 사랑한 물건의 역사

런던 디자인박물관 디렉터가 엄선한 가장 아름다운 물건 250점. 디지털 기기로는 대체할 수 없는 물성과 고유의 감성을 지닌 아날로그 물건들은 깊은 그리움까지 불러일으킨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에서, ‘수동’과 ‘느림’의 미학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2025.04.22 안현재 PD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기술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이 기술에는 공학자의 독창성과 그것을 구현한 디자이너의 창의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비틀스 앨범의 커버부터 코다크롬 컬러필름에 이르는 아날로그 기술의 부산물은 동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압축판이었다. 우리의 삶을 측정하는 실체였다.
---「Introduction」중에서

1940년대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의 큐레이터였던 제임스 레이버(James Laver)는 패션이 겪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반농담조로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버의 법칙’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옷은 입고 다니기에 적절하지 못하다. 시대를 조금 앞서가는 옷은 대담하다는 평을 받다가 적절한 때가 되면 시크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다 금세 유행이 지나며 결국 흉측한 물건으로 변한다. 그 후 그 패션은 재미있는 것, 귀여운 것, 매력적인 것이 되었다가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된다.’ 아날로그 제품도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 즉, 한때 전위적이었던 물건도 유행이 지나고 나면 그저 귀여운 것이 되었다가 마침내 수집가의 품목에 오른다.
---「Introduction」중에서

음반은 지난 세기 오페라와 소설의 뒤를 이어 독자적인 서사를 그려나갈 잠재력을 획득했다. 음반에 실린 곡의 순서는 그것을 즐기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인 동시에, 오늘날 디지털 음악 스트리밍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묘미이기도 하다. 앨범 제목과 재킷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매체가 메시지를 지배한다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전형적인 사례였던 셈이다.
---「1장 ‘사운드’」중에서

기술과 스타일의 변화 주기는 패션만큼이나 빨랐고, 그 결과 아날로그 오디오 기기의 변천사는 곧 취향과 문화의 역사라고 해도 될 만큼 놀랍고 다채로운 양상을 띤다.
---「1장 ‘사운드’」중에서

옌센은 이렇게 말했다. “만년필을 만들고, 시를 쓰고, 연극을 연출하고, 기관차를 설계하는 데는 모두 같은 요소와 소재를 필요로 합니다. 관점과 창의성, 새로운 아이디어, 이해력,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무한에 가깝게 반복해서 재작업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지요. 바로 그 ‘끝이 없는 반복’이야말로 저에게는 가장 잔인한 고문과도 같습니다.” 과학적인 느낌을 주는 계산자 형태의 튜닝 다이얼을 갖춘 베오릿 라디오는 옌센이 설명하는 ‘다르지만 이상하지 않은’ 디자인 방식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1장 ‘사운드’」중에서

브라운이 레코드플레이어와 라디오를 결합한 기기에 투명 아크릴 수지 커버를 씌운 제품을 발표하자, 경쟁사들은 이를 두고 ‘백설공주의 관’이라며 조롱했다. 하지만 장장 20년에 걸쳐 브라운의 정체성을 확립한 디터 람스가 창안한 이 모델은 브라운이 오디오 제조를 그만둔 후에도 오랫동안 레코드플레이어의 보편적 기준이 되었다. 케이스에 목재가 일부 포함된 것은 가정용 전자제품은 어디까지나 가구로 봐야 한다는 당대의 인식을 보여주는 마지막 흔적이었다.
---「1장 ‘사운드’」중에서

“나만의 세계에서 감동의 음향을 즐겨보세요. 주머니에 넣고 전원을 켜면 음악의 무게만 느껴집니다.” 소니가 워크맨이라는 브랜드명을처음 사용한 WM2 모델의 광고 문구 중 하나다. 개인의 공간으로 숨어든다는 개념은 기존의 어떤 제품과도 차별화되는 워크맨의 본질을 포착한 것이자, 이어폰이 음악을 듣는 보편적인 수단이 되는 시대를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기술 그 자체는 기존의 구술 녹음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이 사람들의 행동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이 기기가 등장한 이후 음악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변했다. 검은색과 은색이 섞인 본체에 녹색점과 주황색 고무 헤드폰이 시선을 사로잡는 해당 소니 제품은 산업 디자이너가 전기 기기를 마치 보석처럼 다듬어 낸 최초의 사례였다.
---「1장 ‘사운드’」중에서

2005년에 발표된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의 최고 히트작 ≪솔리드골드히트(Solid Gold Hits)≫의 음반 커버에서 가장 눈에 띈 JVC RC M-90 붐박스는 당시 이미 구하기 힘든 빈티지 전자 제품으로 꼽힐 만큼 오래된 물건이었다. 이 제품에는 라디오 기능도 있고 테이프도 재생되었으나, 아날로그 시대 말기에 나타난 디지털 시대의 선구자 격인 CD는 구동되지 않았다.

이 기기는 음악 문화의 매우 특별한 순간을 함께했다. 미국의 유명 래퍼 엘엘 쿨 제이(LL Cool J)의 1985년 데뷔 앨범인 ≪라디오(Radio)≫의 표지가 바로 이 M-90의 이미지로 거의 뒤덮여 있었다. 이 휴대용 레코드플레이어 카테고리가 탄생한 1963년에는 필립스가 야외에서 사용할 수 있게 배터리 구동방식으로 만든 EL 3300이 있었다. 도시 젊은이 문화의 상징이 된 이 제품은 정원 테이블 위에 얌전히 올려두고 들을 때와 어깨높이로 들어 올릴 때 전혀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1장 ‘사운드’」중에서

종이책과 활자 인쇄가 디지털 시대 이전의 섬세함과 공예적인 측면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덕분에 살아남았듯이, 오늘날 아날로그 사진과 영화도 일종의 전문 기술로 인정받으며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2장 ‘비전’」중에서

이스트먼과 그가 설립한 회사 코닥(그가 판매한 첫 제품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삼았다.)이 사진 분야에서 이룬 업적은 한 세기 후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컴퓨터 산업에서 거둔 성과에 비견될 만큼 대단했다. 그는 복잡한 과학적 과정 탓에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온 사진술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간단한 작업으로 바꿔놓았다. 이스트먼은 유리판 대신 훨씬 가볍고 다루기 쉬운 셀룰로스 롤필름을 사용하는 사진술과 그가 만든 필름을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를 동시에 개발했다.
---「2장 ‘비전’」중에서

더욱 극적인 변화는 텔레비전 뉴스가 기근이나 전쟁의 참상을 거실에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정치적 삶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었다. 흔히 미국 최초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베트남전은 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영향력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그 잔상만큼은 끈질기게 남아 대규모 시위의 불씨가 되곤 했다. 각종 정치 콘텐츠가 유권자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한 정부는 이를 다양한 방식과 수위로 통제하고자 했다.
---「2장 ‘비전’」중에서

19세기에 등장한 모든 아날로그 기술 중에서도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전류를 이용해 구리 선을 따라 메시지를 전송하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인류의 시간 개념과 거리 감각, 소통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중략) 데이터 전송량이 증가할수록 더 많은 구리가 필요했다. 19세기 말, 뉴욕의 거리 풍경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여러 겹의 구리 선이 행인들의 머리 위를 가득 메운 모습이었다.
---「3장 ‘커뮤니케이션’」중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매 가능한 복사기는 장기적으로 정치적인 도구로 해석될 수 있었다. 냉전 시대의 권위주의 정권은 정치적 반대 의사를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은 무엇이든 위협적으로 보고 이를 통제하고자 했다. 그 시절, 타자기와 복사기는 엄격한 규제대상 품목이었다.
---「3장 ‘커뮤니케이션’」중에서

20세기 말까지 아날로그 기술은 크기, 시간, 소리, 온도, 전류, 빛의 밝기 등의 물리적 현상을 기술하는 것은 물론, 온갖 종류의 정보를 측정하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저장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위해 먼저 글쓰기, 종이, 인쇄술 등이 발명되었으며, 이후에 다이얼과 계측기 등이 등장했다. 인류는 이런 기술을 날씨 예측에서 질병 치료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활용했다.
---「4장 ‘인포메이션’」중에서

소유물로 자신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드러내고, 그것을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선호하는 인간의 기질 덕분에 기계식 시계는 일종의 보석과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 수많은 아날로그 기술이 진화의 여정에서 뜻밖에도 이른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지만, 시계만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세련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4장 ‘인포메이션’」중에서

1955년부터 이 디자인 팀을 이끈 사람이 바로 전후 독일 산업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일컬어지는 디터 람스였다. 브라운은 람스의 지휘 아래 토스터, 시계, 손목시계, 라디오, 하이파이 오디오, 텔레비전, 시네카메라 등을 생산했다. 람스는 자신의 디자인 방침을 영국 귀족 집안의 집사와 같은 수준의 제품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사용하지 않을 때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도 꼭 필요할 때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물건이라는 얘기였다. 예술가 리처드 해밀턴은 오랫동안 브라운 제품을 소재로 삼아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몽생트빅투아르산이 폴 세잔(PaulCezanne)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쳤듯 자신에게는 브라운 제품이 그런 역할을 했노라”라고 말한 바 있다. 람스가 자신이 설계한 모든 제품에 적용한 멋진 디자인 논리는 훗날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제품을 디자인한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에게도 깊은 영감을 안겼다. 람스는 생명이 짧은 패션, 의도적 진부화, 과시성 소비 같은 개념을 모두 배척했다. 그는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표방한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라는 정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한편, 자신만의 색을 더해 좋은 디자인은 모자란 듯하면서도 전보다 더 개선된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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