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용의자
저자: <찬호께이> 저/<허유영> 역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찬호께이 3년 만의 추리소설 신작
『13·67』 『망내인』 찬호께이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건너, 정통 범죄추리소설로 귀환했다. 20년 동안 세상과 단절된 남자의 죽음, 그리고 옷장 속에 숨겨진 시체들.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수사는 더욱 깊고 어두운 미궁에 빠져든다. 인간의 고독감을 섬세하게 포착한 본격 미스터리.
2025.04.18 김유리 PD
“이거 그거죠? 뭐라고 하더라..... 은둔형 외톨이? 니트족?”
(……)
네 평쯤 되는 방. 홍콩의 평균 주거 면적으로 보면 꽤 큰 침실에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 있었다. 책상, 옷장, 침대, 책장 사이마다 골판지 상자와 쓰레기봉투가 처박혀 있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다. 벽에는 애니메이션과 온라인 게임 포스터가 붙어 있고, 어수선한 컴퓨터 책상 위에 게임 캐릭터 피규어와 장식품까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요즘 이런 장난감에 푹 빠진 30~40대 성인 남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키다리는 전체적인 모습으로 볼 때 방 주인이 백수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골판지 상자에 들어 있는 라면과 과자, 컴퓨터 책상 옆에 있는 소형 냉장고, 빈 페트병과 맥주 캔, 간식 포장지가 수북한 쓰레기 더미는 사망자가 먹고 자는 것도 잊고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게임을 해왔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였다.
--- pp.17-18
키다리는 이런 사람이 하나 사라져도 무덤덤하기만 한 사회의 냉혹함을 생각했다. 내일 신문에 이 남자의 죽음이 짤막하게라도 실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200자 이내 분량의 기사로 몇몇 인터넷 신문에만 실릴 수도 있다. 타살 혐의점이 없는 자살 사건이었다. 이 소란스러운 도시에는 날마다 다양한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사라져도 사회는 아무 지장 없이 돌아간다.
--- p.19
옷장 안에 크기가 제각각인 원통형 유리병이 스무 개 남짓 놓여 있고, 생체 실험실의 동물 표본처럼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다만 키다리와 아썬의 눈앞에 있는 유리병에 담긴 것은 쥐나 개구리가 아닌, 잘린 팔다리와 장기였다. 인간의 팔다리와 장기.
--- p.20
셰바이천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피해자의 신원을 찾고 그들이 피살된 경위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셰바이천의 살인 동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홍콩이라는 압력솥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정신병을 안고 있다. 그러다가 압력을 못 이기고 폭발해 머리에서 나사가 빠져버리면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는데, 이 모든 건 주사위를 던지듯 운에 맡길 뿐이다.
--- p.52
나는 원래 사람의 시신을 토막 내는 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잔인한 악행이자 금기라고 생각했지만, 그 책을 읽고 나서 여러 토막을 이어 붙여 완벽한 사람을 만든다는 발상에 매료되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신을 무기물로 바라보고 세속의 시선과 윤리의 족쇄까지 벗어던진 채 절묘한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중에 나도 이런 예술품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생명을 대가로 내놓는다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 p.76 「망자의 고백 - 1」 중에서
아바이에게 이 작은 화면은 세상과 통하는 창이다. 그는 바깥세상을 싫어하지 않았다. 다만 바깥세상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일하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갑옷 속에 몸을 감추고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관찰했다.
(……)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데 협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을 감추고, 자신과 사회의 연결을 끊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우고, 고독을 끌어안았다.
--- pp.114-115 「소설 『(제목 미정)』 발췌 - 1」 중에서
가족이 실종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고아이거나 가정이 해체된 상태일 것이다. 다시 말해, 혼자 살았거나 친구도 동료도 없는 여자일 가능성이 크다. 예쁜 외모를 가진 여자가 이 도시에서 자력으로 생존하고자 할 때 렌털 애인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된다. 가족도 친구도 없고 정식 직업도 없는 사람은 소리 없이 사라져도 타인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셋방 주인도 밀린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도망쳤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므로 이런 여자들은 살인마가 가장 선호하는 목표물이 된다.
--- p.152
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돕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모두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인간은 태생적으로 강자가 되길 바라는 종족이며, 약자를 착취함으로써 쾌감을 얻는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궁극적이고 원시적인 의의일 것이다.
--- p.166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도 사회에서 살기 위해 다 나은 척한다. 칼로 가슴을 베인 것처럼 괴로운데도 남들 앞에서는 강한 척해야 한다. 아바이는 “자살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충고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싶다.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단 말인가?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도 된단 말인가?
강남 아파트 인사이트
저자: <오스틀로이드> 저
출판사: 진서원
강남을 처음 공부하는 당신에게
『강남에 집 사고 싶어요』의 저자 오스틀로이드의 신작. 강남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실제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30대부터 60대까지 생애주기별 투자하기 좋은 강남 아파트를 소개한다. 저자의 통찰력 있는 입지 분석과 투자 심리 해석은 투자에 날카로움을 더한다.
2025.04.18 오다은 PD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저자: <수전 매그새먼>,<아이비 로스> 저/<허형은> 역
출판사: 윌북(willbook)
예술이 지닌 힘, 위로와 치유
뇌과학자와 디자이너가 함께 쓴 이 책은 삶이 안 풀릴 때 예술에서 답을 구하라고 조언한다. 예술이 인간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를 다양한 사례와 뇌과학 연구 결과로 입증했다. 나의 시각, 촉각, 후각을 일깨우자. 아름다움이 인간을 구원하리라.
2025.04.18 손민규 PD
예술과 미학은 아름다움을 넘어 훨씬 큰 것을 아우르며, 인간이 하는 다양한 경험에 감정적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예술은 혀에 단 설탕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예술 작품에 도전적인 요소가 담겨 있을 때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는데, 그 불편함은 자세히 들여다볼 의향이 있다면 어떤 변화와 탈바꿈의 가능성을 제공하죠. 그건 굉장히 강렬한 미적 경험이 될 수 있어요.”
--- 「예술의 해부」 중에서
연구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알아낸 사실은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세상과 교류할 때 신체와 뇌에서 다중의 체계가 함께 작동하며 인간의 생은 입력되는 데이터를 본능적, 무의식적, 그리고 의식적 수준에서 끊임없이 처리하는 작용이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시는 약으로도 처방되었다. 그리스인들은 다른 의료적 개입과 병행해 시를 처방했다. 시는 결혼식 같은 사적인 축하 자리부터 미국 대통령 취임식 같은 정치적, 시민적 행사까지 가장 중대한 기념의 순간에 빈번히 등장한다. 시는 하나의 예술 형태로서 인류의 시초부터 함께해왔다.
--- 「감각으로 느끼는 예술」 중에서
표현적 글쓰기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한 연구에서는 과거의 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해 글을 쓰는 행위가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는 결정적 영역인 중앙대상피질을 활성화시켜 뇌 신경 활동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감정과 느낌에 언어를 부여하는 행위가 살면서 겪는 힘겨운 사건들에 맥락을 입히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도록 신경생물학적 수준에서 돕는다는 뜻이다.
--- 「마음의 상처 회복하기」 중에서
그림 그리기나 음악 수업 같은 다른 예술 활동 개입도 두통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한 소규모 연구에서는 자기만의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있으면 만성 두통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긴장을 완화하고 통증을 덜 목적으로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실제로 통증이 완화되고 증상이 개선되었다.
--- 「몸을 치유하기」 중에서
뇌는 표준화 시험의 답안지 채우기나 교과목 평가에 대한 열띤 논쟁에 관심이 없다. 뇌는 새로운 신경 경로를 만들고 끊임없이 진화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우리의 학습 방식은 대개 주입식 암기와 기억하기 위주로 설계된 사회적 교육체계와 절대 같지 않다.
예술은 시냅스 회로망을 증가시켜 해마와 기타 뇌 영역들이 각각 담당하도록 설계된 과제 수행 능력을 더욱 강화한다. 이는 음악을 연주할 때뿐 아니라 삶에서 학습과 기억이 필요한 활동을 수행할 때도 도움이 된다. 한마디로 음악을 연습하면 시냅스와 회백질이 증가한다는 말이다.
--- 「교육과 예술의 상관관계」 중에서
호기심은 진화에 필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인간의 뇌에 장착되었다. 인지신경 과학자들은 호기심이 예측 불가한 세계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걱정 같은 다른 신경 활동들과 함께 위협 감지 체계의 일부로 1000년에 걸쳐 발달했다고 본다. 호기심 덕분에 우리 선조들은 ‘이 붉은 열매는 먹어도 안전할까?’ ‘돌멩이 두 개를 맞부딪쳐 불꽃을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 ‘이 나뭇조각 끝을 뾰족하게 깎으면 어떻게 될까?’ 같은 의문을 품었다.
--- 「잘 사는 삶」 중에서
매튜가 『디 애틀랜틱』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 말에 따르면, 하고많은 목적 중에서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우리가 다른 이들의 마음속을 궁금해하게 이끈다.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을 느끼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특히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에 관여하기에 그렇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이걸 궁금히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스파클
저자: <최현진> 저
출판사: 창비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사고 이후로 스스로의 우울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주인공 '유리'. 자신에게 각막을 기증해준 이의 흔적을 따라가며 낯선 바깥의 눈동자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래된 상처를 마주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2025.04.18 배승연 PD
나의 16년 인생에서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 p.7
행운을 믿는 게 나한테는 너무 어렵다
이해하지?
--- p.30
어떤 답도 낼 수 없는 게 이 수식의 함정이었다.
--- p.54
눈을 맞으면서 생각했어
떨어지는 눈이 형이었으면 좋겠다고
엄마는 이제 형 얘기를 그만하래
하지만 나는 그만할 수 없어
--- p.58
형은 더는 어둠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해 줬지
어둠 속이라서 이렇게 하얗게 빛날 수 있다고
형이 하는 이야기는 가끔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그때부터 형을 동경했다
알고 있어?
알고 있을까……
--- p.79
나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눈송이를 밖으로 밀어냈다. 뜨겁게, 아프지만 찬란하게.
--- p.104
우리는 다 실패했다. 난 나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엄만 엄마대로, 할머닌 할머니대로,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살면서.
--- p.114
그런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물었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 있다.
“그런 믿음은 희망에서 오지.”
--- p.133
사람들은 흔들리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하지만 중심을 잡으려면 흔들림은 필연적이래.
--- p.161
나에게도 꿈이 생길 것 같아
--- p.174
우리는 분명 행복했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나는 결심처럼 이야기했다.
--- p.177
오기가 났다. 원하는 대로 살 것이다.
--- p.188
거친 구름을 만나면 비행기의 표면이 얼어붙는 착빙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죽다 살아나잖아. 나 터프해.”
--- p.197
자꾸 뒤로 기우는 몸 때문에 우스워진 채, 우리는 미끄러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저자: <김영민> 저
출판사: 어크로스
김영민 서울대 교수의 한국인론
적확한 분석과 유쾌한 문체로 참신하게 세계를 바라본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한국인에 관해 말한다. 한국인이 누구인지를 묻는 과정에서 단군신화, 불교와 유교, 식민지 시기를 거친다. 지금 대한민국을 형성한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조망하며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탐색했다.
2025.04.15 손민규 PD
21세기의 한국은 정치의 실패이자, 헌정의 실패이자, 법치의 실패이자, 정당의 실패이자, 선거의 실패이자, 교육의 실패이자, 언론의 실패이자, 사회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한국을 이해해온 방식의 실패이기도 하다. 안이한 언어와 게으른 상상력에 의존해온 기존 이해 방식의 실패다. 이제 한국을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 한국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 숙고할 때가 왔다. 한국을 이해할 언어를 새롭게 발명할 때가 왔다.
--- 「프롤로그」 중에서
세속 국가에서 종교적 신념을 통해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종교 대신 동원할 수 있는 것이 역사다. 역사는 결국 오늘의 사태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이고,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사태는 달리 보인다. 그래서 정치권력은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역사서에 담고 싶어 한다.
--- 「삼국시대라뇨」 중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할 것인가? 시공을 넘어 지속되는 한국이란 공동체는 이 선택적 기억과 망각의 결과다.
--- 「왕의 두 신체」 중에서
그때서야 작은 깨달음이 왔다. 그렇군, 유교랜드는 과거의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현대 한국을 보여주는 곳이군.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다고 말한 적이 있지. 유교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한국 전체가 유교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동에 있는 것이 아닐까. 꼭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라기보다는 현대 한국이 발명한 ‘유교’의 랜드.
--- 「유교랜드」 중에서
한국사에서 노비는 단순히 신분제 때문에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다. 노비는 집단적인 망각과 무시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도 사뭇 흥미롭다. 그토록 많은 노비가 실존했으나 지금은 노비의 자손(을 표방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 바로 현대 한국이다. 동시에 강남의 고급 아파트 대표회장이 관리소장에게 “종놈이 감히!”라고 소리 지르기도 하는 곳이 바로 현대 한국이다.
--- 「노비랜드」 중에서
쿠데타는 단순히 법을 어기는 행위가 아니다. 누가 노상방뇨를 한다? 그것은 위법일 수는 있어도 쿠데타는 아니다. 누가 소매치기를 한다? 그는 잡범이지 쿠데타 수괴가 아니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법을 어기는 것이 쿠데타가 아니라 법을 초월하는 것이 쿠데타다. 그래서 미셸 푸코는 쿠데타 상황에서 국가이성은 “법 자체”에 명령한다고 말했다. 법을 어기고 지키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권위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 쿠데타의 본질이다.
--- 「〈서울의 봄〉과 쿠데타」 중에서
혁명은 일어났으나 혁명이 약속한 세상이 오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혁명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외칠 뿐이라고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말한 적이 있다.
--- 「혁명을 끝내는 법」 중에서
한국 사회는 꾸준히 계몽에 의존해왔다. 너도 나도 외쳐왔다. 정신 차려! 머리에 힘줘! 운동권의 의식화 프로젝트는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계몽 프로젝트 중 하나다. 계몽에 의존한다는 것은, 의식을 바꾸어서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인가 깨치지 못해서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피계몽자에 대한 계몽자의 도덕적 우위를 전제하는 것이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계몽은 얼마나 성공했을까.
TSMC와 트럼프 이펙트: 대격변 예고
저자: <콜리 황> 저/<이철> 역
출판사: 경이로움
드디어, TSMC가 입을 열었다
트럼프 정부가 주도한 반도체 공급망 재편 속에서 전 세계가 TSMC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AI 기술 주권과 최첨단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 TSMC를 중심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어떤 전략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통찰력 있게 짚어냈다.
2025.04.15 오다은 PD
TSMC는 우월한 기술력, 과감한 자본 투자,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다수의 거대 기술 기업들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균형 잡힌 수급 시스템이 붕괴되어 글로벌 산업 혼란이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엔비디아,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구글, 메타와 같은 미국의 기술 기업이 될 것입니다. 옥석구분은 상인의 셈법일 수 없으며 쥐어짜야 나오는 이익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누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느냐’에 있습니다.
--- p.17
2024년까지 TSMC는 13개의 12인치 웨이퍼 팹, 9개의 6인치 및 8인치 팹을 보유하게 됩니다. 이에 더하여 OSAT 기능을 갖출 공장 5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전 세계에 최소 10개의 신규 공장을 설립할 계획입니다. 이 공장들은 다양한 공정 요구 사항을 가진 528개 고객사에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 “모든 이들을 위한 파운드리가 되겠습니다”가 TSMC의 모토입니다. 7만 6,000명의 TSMC 직원들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킴으로써 업계에 무해한 파트너임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pp.53-54
삼성전자 경계현 사장이 대만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 저는 한국 산업 전문가로서 타이베이의 만다린 호텔에서 그와 의미 있는 조찬 회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1985년 한국 전담 산업 연구원으로서 대만에 부임한 이후 40년에 걸쳐 저는 한국 전자 산업의 발전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해 왔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오명, 배순훈, 진대제 등 세 명의 한국 과학기술부 장관들과 여러 차례 만났으며, 삼성의 고위 임원진인 이준우, 진대제, 영손, 그리고 경계현 사장이 대만을 방문할 때마다 비공식적인 교류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 p.126
여러 세대에 걸친 조상들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와 무역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해왔습니다. 대만의 자손으로서 저는 대만을 번영하고 부유한 ‘하늘이 보우하는 섬’으로 만든 선천적 장점과 후천적 노력의 결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첨단 칩, 서버, 노트북의 80% 이상이 대만 제조업체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전원 공급 장치, 커넥터, 인쇄 회로 기판, 전자 회로 등 IT 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대만 기업인들은 뛰어난 기술력과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 p.212
중국은 주변 각국에 중국이 독자적으로 정한 게임의 규칙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정작 국제적 틀을 끊임없이 깨뜨리고 있는 중국 자신은 보편적인 국제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 대변인이 “중국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지만 모든 것은 반드시 객관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라고 신중하게 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중국의 이중적 태도 때문입니다.
--- p.269
중국은 산유국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디지털 화폐와 전자 거래를 통해 자국 통화의 양상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화폐는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안화가 디지털화되면 중국은 위안화의 흐름을 추적하여 중국인들이 자유롭게 해외로 돈을 밀반출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새로 취임한 트럼프 행정부는 필연적으로 미국 달러를 무기로 사용할 것이며, 미국 달러를 포기하는 국가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압력에 직면해야 할 것입니다.
삶의 실력, 장자
저자: <최진석> 저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장자는 열심히 살았다
노자 『도덕경』으로 친숙한 최진석 철학가의 첫 번째 『장자』 읽기. 장자라고 하면 세속과 거리를 두며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알려졌지만, 장자의 세계관은 입체적이다. 이 책은 기존 장자 해석의 한계와 오류를 지적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인간상에 초점을 맞춘다.
2025.04.15 손민규 PD
세상의 주인은 대답하는 자가 아니라 질문하는 자고, 세상의 주도권은 멈춰서는 사람이 아니라 건너가는 사람이 갖는다. 실력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질문하는 자고 건너가는 자라면, 삶의 실력은 바로 ‘덕’의 발휘일 뿐이다.
--- p.10
장자 철학은 입체적인 철학입니다. 입체적이라는 말은 시간 관념이 다뤄진다는 뜻입니다. 입체성을 지탱하는 관념이 바로 시간을 타고 작용하는 운동이고 변화인데, 운동과 변화를 해명해주는 것이 바로 ‘기(氣)’라는 범주입니다.
--- p.29
장자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고 싶으면, 장자의 행위를 그대로 따라 해보는 것이 아니라, 장자가 가졌던 자세와 시선의 높이를 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것이 근원이나 근본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겁니다. 더 줄여서 말하면,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세히 살피고, 깊이 생각해보는 태도를 배양하는 것입니다.
--- p.76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말해줄 수 없소. 공간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오. 여름 한철 사는 벌레에게는 얼음을 말해줄 수 없소. 시간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오. 자잘한 선비에게는 도를 말해줄 수 없소. 교육받은 내용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오.”
--- p.127
‘성인은 항상 무심하다’는 ‘자기 마음이 없다’는 것이고, 이는 ‘자신의 마음을 갖지 않는다’ 혹은 ‘정해진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정해진 마음이 없으면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죠. 오히려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습니다. 백성은 이론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습니다.
--- p.142
능동적 주체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자신의 입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아름다움을 말하고, 내 아름다움을 쟁취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내 행위의 기준을 만드는 사람, 내가 내 사유를 거쳐 내 정치적 태도를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장자』에 나오는 ‘자쾌’나 현대의 ‘자유’라는 개념은 전부 능동적 주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 p.200
하고 싶은 일, 꾸는 꿈, 도모하는 일에 맞는 두께를 갖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눈이 높으면, 거기에 맞는 두꺼운 내공을 쌓아야 하죠. 눈은 높은데, 거기에 맞는 내공의 두께를 쌓는 일에 게으른 사람은 신도 구제할 수 없습니다.
--- p.228
성인이나 지인이나 신인과 같은 삶을 일상에서 구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모호합니다. 일상에서 그것을 해나가는 방법이라면, 그것은 목표에 갇히지 않고 목적을 갖는 것입니다.
--- p.246
도가적 경지에 이르는 출발은 노력입니다. 두껍게 쌓는 것입니다. 두껍게 쌓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두껍게 쌓고 쌓다 보면 물고기가 질적 전환을 해서 존재 위치가 대붕으로 확 바뀌어버립니다.
--- p.251
장자는 정해진 마음에서 벗어나는 일을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설정합니다. 〈제물론〉 편에서 ‘오상아(吾喪我)’, 즉 ‘자기 자신을 장례 지내기’ 혹은 ‘자기 살해’와 같이 극단적인 표현을 감수하는 이유입니다.
--- p.258
자기 각성이 없는 일은 어떤 것도 자기한테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사회에도 의미가 없고, 나라에도 의미가 없고, 이 우주에도 의미가 없습니다. … 숙고함에서는 자신에 대해 묻는 일이 가장 근본적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위대함의 출발점은 항상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 p.306
죽을 때까지 힘을 다해도 그 성공을 보지 못하고, 지치고 힘들어도 결국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다.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본래 이렇게 어리석은 것인가. 나 혼자만 어리석고 사람들 가운데는 어리석지 않은 사람도 있는가.
숲을 읽는 사람
저자: <허태임> 저
출판사: 마음산책
식물의 언어로 읽어나가는 세상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일하는 허태임의 에세이. 멸종 위기 식물을 보전하고 숲을 복원하는 식물분류학자의 일과 삶을 말한다. 험준한 자연, 인적 드문 산속 등 길이 없는 곳도 마다치 않고 초록이 건네는 온기를 찾아내는 것. 식물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는 세상에 필요한 배려와 존중의 가치를 전한다.
2025.04.15 이주은 PD
식물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사랑의 끈 같은 것을 생각한다. 서로를 잇고 있는 끈을. 겨우내 눈 속에 묻혔던 씨앗은 다음 봄이 오면 되도록 좋은 유전자를 고루 섞은 새로운 싹으로 피어난다. 그 싹은 군락을 키우고 영토를 넓히는 방식으로 힘을 보태 세대를 잇는다.
--- p.8
나는 눈물을 훔치며 매일매일 찾아오는 밤이 너희는 무섭지 않느냐고 나무에게 물었다. 어둠을 통과했기 때문에 해가 뜨는 거라고, 빛은 그렇게 우리를 찾아오는 거라고, 그건 지극히 자연적인 거라는 답변이 환청으로 들렸다.
--- p.39
종과 종의 경계를 재단하는 분류학은 고정불변한 진리가 아니라 변화하는 자연에 맞서 유한한 인간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가설을 진리 가까이 이끌려는 계속되는 노력이다.
--- pp.44-45
각종 지도 앱에서 제공하는 정식 등산로 너머 길이 표시되지 않은 구간이 주로 내 일터다. 내가 얻을 수 있는 디지털의 혜택은 딱 거기까지다. 대신에 그때부터 나는 예상 소요 시간을 넘겼다고 초조해할 필요가 없어진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게 된다. 길이 없는 곳에 사는 식물들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만드는 게 나의 일이니까.
--- p.53
가을에 접어들이 식물들의 잎이 말라간다고 해서 식물이 발달을 멈추는 건 아니다. 식물은 더 치밀하게 세포를 만드는 방식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하듯이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일. 나무는 그렇게 겨울눈을 만드는 일에 힘을 쏟는다. 겨울눈을 안전하게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낙엽의 시절에 든다. 그러고 나면 나무는 다가올 혹독한 시절을 견딜 힘을 얻는다.
--- pp.64-65
공명共鳴은 물리학에서 외력에 의한 진동을 의미한다. 무지막지한 힘의 작용이 아니라 박자에 맞춘 반응을 뜻한다. 바이올린 활로 현을 긁어 진동을 일으키면 그 소리가 공명통에 닿아 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는 현상. 그렇다면 누군가의 사상이나 행동에 공감해 따르는 것 또한 공명 아닐까. 어떤 사람의 자비로운 마음이 파장을 일으켜 주변을 온통 자비로운 기운으로 바꾸는 일이야말로 업業이며 깊은 울림일 것이라고, 자꾸만 더 짙어지는 유월의 가문비나무 숲은 내게 공명한다.
--- p.98
호야는 대체로 심성이 곱고 순탄한 편이다. 너무 자주 물을 달라고 보채지 않는다. 두툼한 잎에 스스로 수분을 비축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식물처럼 빛 경쟁에서 앞서려 키를 위로 높이지도 않는다. 그 대신 다른 식물 아래에서 더 넓게 옆으로 퍼져 산다. 키는 작지만 품은 넉넉한 주교님 같다. 주교님과 호야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광휘가 있다.
--- p.111
59번 국도가 이어준 많은 길 위에서 나는 멈추지 않았다. 팽나무를 만나며 팽나무의 언어를 알아듣고 팽나무의 이름을 바르게 불러주는 일을. 그러는 동안에 나의 포부는 그들에 대한 경외심으로 바뀌었다. 분류학적 실체를 밝히거나 오류를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어쭙잖은 식견이 이제 전과는 다른 형태를 갖추게 된 것도 같다. 우리 행성의 대선배인 팽나무의 지혜를 배워야겠다는 희망과 기대 같은 것으로. 길 위에서 팽나무를 만나는 일을 나는 계속해서 하고 싶다. 여전히 꿈꾸고 싶다.
--- p.142
이제 가을은 유독 더디게 도착하는 것 같다. 이러다 가을이 사라지는 거 아니냐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근심 따위 아랑곳없다는 듯 갈잎나무는 어김없이 제 몸에서 물든 잎을 뚝뚝 떨군다. 나는 기후 위기와 전쟁 같은 말이 몰고 오는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깊어가는 가을과 머지않은 겨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무는 잎을 모조리 잃고서야 진짜 수형을 드러낼 테지. 나목은 무장도, 꾸밈도, 감춤도 없을 테지. 그러니 나목은 제 것이 아닌 걸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겠지.
--- p.188
박주가리 씨앗의 이동을 ‘출가’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진정한 출가란 특정 수행자에게 한정되는 게 아니며 모든 집착과 얽힘에서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출가라던 법정 스님의 법문처럼, 박주가리 씨앗은 깡마른 채 가느다랗고 길고 촘촘한 깃을 펼치며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내적 절제에 있다고. 그걸 품기 위해서는 거듭된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해낸다. 정말 먼 곳으로 가서 더 넓은 땅에 자리 잡는 그 거룩한 일을.
'주간 북데이터 리포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간 베스트셀러 도서 (2024-04) (1) | 2025.04.25 |
---|---|
2025년 4월 4주 주간 베스트셀러 (1) | 2025.04.22 |
2025년 4월 3주 베스트셀러 (0) | 2025.04.16 |
2025년 4월 2주 베스트 셀러 (0) | 2025.04.14 |
2025년 4월 2주차 도서 추천 (1) | 2025.04.12 |